930년 10월 23일자 동아 일보에 실린 백인제 박사에 대해 적은 기자의 글이다.
구두질 수술쟁이 백인제 박사
골병(骨炳)과 일광욕을 연구 - R 기자
의전 교수 백인제 박사!
울툭불툭하기론 돌밭 같다는 선생을 찾기에는 송구스러웠다. 마치도 어린아이가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때와 같은 감을 느끼었다. 선생의 인정(人情)없이도 울툭불툭한 이 성질이 선생으로 하여금 명의(名醫)를 만든 유일의 요소라 할 것이니 병자들이 아프다고 죽을상을 하고 함성을 지르나 선생은 들은 체도 않고 쇠꼬챙이로 부엌 고래를 훑듯이 훑어 버리는 데는 제일 선수로 병에는 백발백중이라 한다.
이같이 선생은 아프다는 사정을 보지 않는 의사, 연구에서보다 차라리 실제에서 선생의 능한 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다.
그러나 급기야 만나 보니 선생의 외모만은 예상과 달리 매우 반질반질하였으며 선생은 책상 위에 장난감 같은 조각이 서 있는 것이라든지 천녀(天女)들의 나체화 같은 것이 걸리어 있는 것을 보아서는 선생의 그 울툭불툭한 성질과는 반대되는 아니 그 울툭불툭한 성질 한 모퉁이에 간지럽고도 보드라운 정이 살아 있는 것이 마치도 험상궂은 남자의 손에 보석 반지가 끼인 듯한 감을 일으킨다.
선생은 정주 오산중학교를 마친 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대정 10년(1921년)에 졸업하고 곧 동교 외과 조교수로 있어 연구를 계속하다가 재작년 여름에 박사의 학위를 얻고 따라 동교의 교수로 있게 되었다.
선생이야말로 앉은 박사이니 의전을 마치고 앉은 자리에서 연구를 하여 박사의 학위를 얻기는 선생이 처음일 것이다. 이 같이 진출한 데는 어떠한 고심과 노력이 잠재하여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연구를 위한 여행은 상당히 하였다. 대만에서 토인(土人: 원주민), 봉천(지금의 중국 요령성 심양)에서 중국인의 혈액 검사를 하였고 금년 봄에 구주 시찰까지 마치고 귀국하였다. 스위스에 가서 골병과 일광욕의 관계에 대한 시찰을 하였고 백림의대(베를린 의대) 같은 곳에도 들러왔다. 선생은 세계에서 일광욕에 최적지라는 스위스가 조선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널리 세계에 조선을 소개하였다 한다.
구주를 휘돌아 오게 될 때 영국 켐뿌릿지(캠브리지) 대학 학생들의 그 쾌활스러운 학생 생활이 특히 눈에 띄었다 한다. 그곳에서는 학교 스트라이크(동맹 휴업) 같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왜 그런고 하면 학생 전체가 기숙사 생활로 선생들과 동거하게 되어 선생의 지식뿐만 아니라 전인격 그 생활까지 학생의 본이 되어 있다 한다. 차라리 학생들의 제일 친절한 동료 동지가 되어 있는 까닭이라 한다. 구주의 문명! 그에 경탄의 눈을 뜨고 온 선생은 조선의 현실에 하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듯이 보였다. 아마도 그 별천지에선 별다른 꿈도 꾸었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귀한 물건을 사 가지고 만족하여 돌아오셨다는데 돌아와 헤쳐 보니 이 물건 저 물건 모두 영부인의 물건뿐이었다고 한다. 근친들이 와서 보았으면 입을 삐죽거렸겠지마는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인 게 선생 자신이 쓸 물건도 잊어버리고 그랬는데야 어찌하리.
영부인의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현재 배화여교 선생인데 선생으로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는 손님이 열 명이 와도 고기 한 근으로 돌려 맞추는데 배부르게 먹고도 남게 만드는 묘한 재간이 있다 한다. 선생은 이러한 재미있는 가정에서 떠나기는 기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남의 속 모르는 친구들은 공연히 외출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해서 불평이라고.
선생은 울툭불툭한 명의라는 것은 다 아맂마는 의사의 허울을 벗고 보면 이름나지 않은 숨은 소설가라는 칭까지 있다. 아마도 의사로 일생을 넘기기에는 어디인가 섭섭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백인제 박사의 은사인 총독부의원 소속의 우에무라 슈운지는 외과 의원 개업을 위해 한말 대표적인 친일 부역자였던 조중응에게서 현 서울백병원 위치의 병원 부지와 건물을 사들여 우에무라외과의원을 개원하였다.
그는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수제자인 백인제 박사에게 자기 병원을 인수해 줄 것을 요청했고, 백인제 박사가 이를 사들여 오늘날의 백병원의 모체가 만들어 졌다. 일제 강점기 때의 주소는 경성부 남구 영락정 2정목 85번지. 사진은 정부 기록보존소가 보관하고 있는 백외과의원의 지적 원도.
백인제 박사는 1936년 우에무라외과병원을 인수하였지만, 본격적인 병원 경영에 나선 것은 1941년부터이다.
경성지방법원 토지 등기부(사진 참조)를 보면 우에무라외과의 인수 시점, 이병훈의 위탁 경영 사실, 조선식산은행에서 융자를 받은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