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제 박사는 도산 안창호 및 흥사단원들과 교류가 깊었고, 평소에도 도산의 무실역행(務實力行) 휘호를 즐겨 사용했다. 흥사단원들과 1936년 노량진 용봉정에서 야유회를 갖고 기념 촬영을 한 것이다. 2열 중앙의 도산 안창호를 비롯하여 3열 왼쪽부터 백인제, 주요한, 유기준, 이상준, 유상규, 최경진(백인제 부인)
서재필은 해방 직후인 1947년 미국정 장관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과도 정부의 최고 정무관이 되었다. 귀국 직후 백인제 박사 자택을 방문하여 기념 촬영을 했다. 백인제(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서재필(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이광수(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이용설(뒷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등이 보인다. 백인제는 서재필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백인제의 동생 백붕제는 수선사라는 출판사를 차려 서재필 자서전을 발간했다.
1941년 백인제 박사가 직접 병원 경영에 나선 후 환자들이 몰려 입원실이 크게 부족하자 1942년 수술실 및 진찰실이 있던 자리에 증축 공사를 해, 수술실 및 외래 병실 7개를 증축했다.
일본인 간호사 마루따의 귀국을 기념하여 수술실과 진찰실이 있던 신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앞줄 가운데가 마루따 간호사, 양쪽에 백인제 박사와 최경진 여사. 백인제 박사의 왼쪽에 돌양이 보인다. 돌양은 병원 창립을 기념하여 백인제 박사가 구해 온 것으로 양쪽에 두 마리가 있었는데 현재는 해운대백병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