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e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관리자access_time 2018.08.02 17:21visibility 316
20여년 동안 해외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 나에게 해외 의료봉사를 가는 것은 언제나 마음 속의 바램이었다. 의과대학을 지원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도 실력 있는 의사가 된 후에 의료혜택을 받기 힘든 나라들에 가서 봉사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잦은 지진과 쓰나미, 화산폭발과 홍수, 폭동과 테러에 대한 두려움에 하루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에도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여태까지 마땅히 의료봉사를 갈 기회를 갖지 못했었는데, 이번 7월 8일~7월 14일, 5박7일동안 떠난 이태석 국제 의료 봉사단의 미얀마 의료봉사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미얀마 의료봉사에서 첫날은 산부인과에서 보냈다. 양종필 선생님께서는 가장 먼저 환자들과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미얀마 언어를 익히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조금 지나다 보니 서툰 미얀마 말이지만 나름 능숙(?)하게 입에서 튀어나왔다.“밍글라바~ 아떼 베네레레?” (몇살이세요?) “레떼 삐비라?” (결혼 하셨나요?) “클래 베네야 쉬라?” (아이가 몇 명 있나요?)
양선생님의 진료를 돕는 일은 즐거웠다. 나는 매일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면서 환자들에 대해 기록을 해두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쌍둥이를 임신한 산모였다. 산모는 우리가 있는 병원의 간호사다. 아이들의 심장소리가 초음파를 통해서 들리자, 간호사 친구가 즐겁게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였고, 산모는 너무나 기뻐서 함박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 나도 너무 감동적이어서 사실 눈물이 살짝 고였었는데 부끄러워서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통역하는 미얀마 언니가 살그머니 휴지를 건내 주었다.
셋째날은 마취과에서 이근무 교수님과 함께 환자를 보았다. 마취과를 찾는 환자들은 대부분의 다리가 아프신 어르신들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병원을 찾은 환자들 몇몇은 아픈 관절부위에 알 수 없는 나뭇잎을 대고 붕대를 감고 오는 것이다. 미얀마 민간요법인 것 같았다. 미얀마 어르신들도 한국 어르신들과 비슷하게 아프면 주사를 맞고 싶어하였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보시면서 주사도 놔주시는 교수님이 언제나 웃으시면서 진료를 하시는게 너무나 멋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오른쪽 어깨관절이 아프신 할머니였는데, 팔을 들기조차 힘드셔서 교수님께서 주사를 놔주셨다. 그런데 주사를 맞고 불과 몇 초 후에 할머니께서 어깨를 자유롭게 돌리실 수 있었다. 할머니는 너무 기쁘셔서 나의 손을 꼭 잡고 연거푸 고맙다고 하셨다.
소아과는 둘째날과 마지막날, 허윤정 교수님과 안소정 선생님을 도와서 환자들을 보았다. 아이들한테 “밍글라바~”라고 인사를 하면 천사 같은 미소로 웃어주거나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였다. 소아과 진료를 하면서 너무나 마음 아픈 환자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는 발달이 느리다고 온 아이였다. 아이의 콧등은 넓고 낮았으며, fish mouth를 볼 수 있었는데, 교수님께서는 genetic syndrome이라고 하시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얼른 병원에 가서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셨다. 소아과에서는 내과 환자도 많이 보았다. 아이들이 대부분 학교를 가서 소아환자는 많지 않았지만, 내과 환자는 넘쳐났기 때문이다. 내과를 찾은 환자들은 대부분 고혈압과 당뇨로 온다.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미얀마 음식은 대부분 짜고 매우 기름졌다. 고혈압 환자가 많은 이유도 이런 식습관 때문인 것 같았다. 내과를 들리는 환자들 중에는 다른 과 진찰을 받고 싶어 하는 환자들이 많아, 나는 환자들을 다른 과 진료실에 데려다 주는 일이 많았다. 환자들과 함께 걸으면서 환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 같다. 우산 없이 뛰어다니는 나에게 우산을 씌워 주셨고, 어떤 분은 뛰고 있는 나에게 달려와 자신의 가방으로 비를 막아 주셨다. 내가 다음 진료장소로 데려다 주면 사탕을 주는 아이도 있었고, “Thank you very much!”라고 능숙한 영어를 하시면서 악수를 청한 멋진 할아버지도 계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서 행복하였다.
미얀마 의료봉사 기간 중에는 비가 많이 와서 날씨도 매우 습하고 더웠는데, 하루에 600여명이 넘는 환자들이 몰려와 정신도 없었다. 하지만 의료봉사를 하면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추억들도 많이 쌓았다. 첫 의료봉사인만큼 환자를 처음으로 가까이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 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접수에서 내가 직접 혈압을 재서 고혈압 환자를 발견하고, 그 환자가 내가 잰 혈압수치 때문에 혈압약을 처방받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였다. 주사 맞을 부위를 직접 소독하고, 환자들이 아플 때 내 손을 꼭 잡은 순간들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환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나의 의학 지식이 아직 얼마나 부족한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봉사활동 첫날 양종필 선생님의 “저 사람들은 우리 없어도 잘 살아요”라는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일하는 의료인이 되고 싶다. 어려서부터 봉사활동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봉사는 ‘giving’이 아니라 ‘sharing’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졸업을 하고 실력 있는 의사가 되어 꼭 다시 내가 살았던 인도네시아로 돌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나에게 소중한 경험과 따뜻한 추억을 갖게 해주신 선생님들, 스태프, 그리고 봉사단원들 모두 제주띤바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