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e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관리자access_time 2020.02.13 16:26visibility 167
이번 해부실습은 나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행복했고, 많은 것을 느꼈던 12일간의 일정이었다.
내가 해부실습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해부학적 구조를 알면 의학적 지식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더 해부실습을 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해보고 싶었고, 규슈의대 해부실습에 참가하게 되었다.
1월 6일, 하카타역에서 20분 정도 걸려서 규슈의대에 도착한 후 교수님과 함께 병원과 학교 건물을 둘러보았다. 그 후 실습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실에서 대기를 하는데 약간 떨리는 기분이었다. 1년 만의 해부라니 해부실, 학생들의 분위기, 시설이 우리 학교와 어떻게 다른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후 해부실로 들어가 자기소개를 했다. 그 후 우리 5명은 호스트 학생을 따라 각각의 조로 흩어져서 실습에 참여했다. 나를 맞아준 학생은 Haruka였고, 27조에서 실습을 하게 되었다. 해부실은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고, 익숙한 포르말린 냄새가 났다. 우리 학교보다 넓고 깔끔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해부실이었다.
12일 동안 해부 실습에는 5번 참여했고, 해부 3번과 상호학습 2번의 일정이었다. 시간표에 ‘상호학습’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한국에서 보고, ‘조별로 토의를 하면서 공부하는 건가?’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해부학을 공부하는 다른 학과 학생들이 카데바를 보러 오면 각 조에서 설명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첫 날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이 왔는데, 일본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조원들이 각 구조물을 자세하게 설명을 잘 해주는 것 같아서, 하루카에게 물어보니 다른 과 학생들과도 이미 상호학습을 여러 번 진행했다고 했다. 자신들도 설명을 하면 할수록 점점 발전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었는데 나도 거기에 동의했고, 의과대학 학생과 다른 학과 학생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라고 느꼈다. 다들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또 진지하게 설명을 듣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인상 깊었다.
규슈의대의 실습 방식 중 가장 좋았던 것은 한 조가 4-5명 정도의 조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능동적, 주도적으로 해부 실습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부 실습 자체가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분위기였는데, 조별로 진도가 다르고 체크리스트도 다른 조와 서로 바꾸어 학생들이 직접 확인하였다. 아쉽게 느껴졌던 점은 조원들이 전신을 같이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2-3명씩 상반신, 하반신을 나누어 해부한다는 것이었다. 진도가 빠르고, 같은 시간 안에 더 자세히 해부할 수 있다는 점이 좋지만, 학생들이 해부를 하지 않은 부분의 실제 구조물은 잘 모른다는 것이 아쉬웠다.인상 깊었던 것은 시체와 구조물 보관이 매우 잘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해부 후 떼어낸 구조물을 각각 비닐 안에 넣은 후 알코올을 부어서 보관을 하고, 시체 위에는 타올을 덮어 알코올을 적셔서 보관을 하는데, 한학기의 해부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는데도 시체 상태가 너무 좋아서 감탄을 했던 것 같다.
해부하는 과정이 매우 자세하고 세세한 구조물까지 다 확인한다는 점에서 우리학교와 차이가 있었다. 내가 코의 해부를 공부할 때 코선반과 콧길의 위치가 헷갈려서 아틀라스 어플을 보면서 어렵게 이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반으로 절단한 얼굴뼈를 안쪽에서 보니, 코 안쪽 구조가 한눈에 보이고 이해가 쉽게 되었다. 작은 구조물까지 찾고 해부하기 위해 이미 확인한 구조물을 자르고 제거하고, 뼈를 절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였고, 그런 게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내가 해부할 때는 뼈나 구조물을 아예 제거하는 건 드문 일이었고, 일본 학생들 정도로 자세하게 해부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구조물들을 잘라내고 나면 위치관계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이미 본 부분은 잘라내고 세세한 부분까지 해부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나는 상반신 해부에 주로 참여했는데, 조원들과 함께 볼, 입천장, 혀, 눈 해부를 했다. 해부할 때 우리학교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해부 실습 지침을 교수님이 영상으로 제작해주시는 것을 얘기했는데, 지침서만 보고 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조원들 모두 동의했었다.
해부실습을 통해서 느낀 점도 많지만, 규슈의대에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났던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학생들이 친절했고, 먼저 다가와주는 학생들도 많아서 고마웠다. 한국, 일본 학생들이 같이 모여 식사를 2번 했었는데 즐거운 분위기에서 학생들과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에는 다들 헤어지기 아쉬워서 서울, 부산, 일본에서 다시 만나자는 얘기를 하고 왔을 정도였다. 의대에서 매번 같은 동기들만 보다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것 자체가 나에게 신선한 환기가 되는 경험이었고, 새로 친해진 사람들과 보낸 12일은 소소한 일에도 웃고 행복해했던 날들이었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들이라 쓰지 않은 감상들은 잘 기억해서,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여러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준 해부실습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