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e 김주영access_time 2025.02.04 11:49visibility 68
저는 예과 2학년 2학기 해부 실습을 하며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인체 생리를 담당하는 구조물을 직접 찾아내고 확인하는 과정이 와 닿았고, 기억에도 오래 남아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카데바 실습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던 중, 항상 아쉬웠던 점은 실습 시간이 한정적이라 세부적인 부분이나 얼굴, 골반과 같은 복잡한 부위를 충분히 탐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규슈 의대의 해부 실습 프로그램 공지가 올라왔을 때, 해부 실습을 더욱 심도 있게 경험할 기회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외국 의대의 학습 체계를 경험하고, 일본인 친구들과 교류하며 해부 실습을 진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실습을 떠나기 전까지 설레는 마음이 컸습니다.
일본 규슈 의대 해부 실습 과정
실습은 1월 5일부터 1월 18일까지 2주간 진행되었으며, 실제로 해부 실습에 참여한 날은 7일, 10일, 14일, 15일 총 4번이었습니다. 하루 실습은 오전(9:00-12:00) 또는 오후(13:00-16:20)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숙소는 직접 마련해야 했기에 나카츠카와바타역 근처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에어비앤비를 3명이 함께 이용했습니다. 숙소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30분, 번화가인 텐진역까지는 20분 정도로 접근성이 좋아 만족스러웠습니다. 이후 일본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나카츠카와바타 인근이 유흥가가 많아 밤에는 다소 위험할 수 있다고 했지만 생활해보니 일부 거리를 제외하면 비교적 안전했던 것 같습니다.
1월 6일 실습 첫날, 석대현 교수님께서 직접 가이드를 해주셔서 규슈 의대와 부속 병원의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학교는 병원과 함께 평지에 위치해 있었고, 전체적으로 넓고 깔끔한 인상이었습니다.
오후 실습이 시작되면서 실습실에 들어섰는데, 우리 학교의 지하 실습실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습니다. 해부실 특유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쾌적한 분위기였습니다. 또, 우리 학교에서는 앞치마와 토시 등을 세척해서 사용하지만, 일본에서는 일회용 헤어캡, 앞치마, 토시를 사용해 실습 후 처리가 훨씬 편리했습니다.
실습은 그날 발표를 맡은 조원이 해당 부위에 대해 발표한 후 진행되었으며, 간혹 교수님처럼 보이는 분들이 추가 설명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시점이 실습의 막바지여서 그런지 시신은 이미 많이 해부된 상태였고, 부위별로 절단되어 있어 놀라웠습니다. 시신은 크게 양팔, 양다리, 머리, 몸통(흉부/골반) 등 6부분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머리는 시상 단면으로 절단되어 코둔덕과 혀 근육 등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해부 조는 4-5명 정도로, 우리 학교보다 한 시신당 인원이 적어 보다 깊이 있는 실습이 가능했습니다. 내가 배정된 조에는 3명의 일본인 조원이 있었으며, 나는 하지 팀에 합류해 조원인 카즈키 군과 함께 2주 동안 골반과 인접 장기들을 해부했습니다.
또 흥미로웠던 점은 이용하는 해부 자료의 차이였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대부분 아이패드로 Anato Inje 영상을 참고하거나, Atlas, Complete Anatomy 등의 3D 앱을 활용하는 반면, 일본 학생들은 일본어 아틀라스 책 한 권만 펼쳐두고 이를 따라가며 해부를 진행했습니다. 또, 실습 중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할 수 있는 선생님 같은 분들이 3-4명 상시 대기하고 있어 든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구 사용에서도 차이가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혈관이나 신경을 찾을 때 메스보다는 핀셋과 가위를 주로 사용해 다소 소극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더 깊은 부위를 관찰하기 위해 골반 절단, 자궁 적출 등을 주저 없이 진행하는 점에서는 또 다른 태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호 학습 시스템
처음에는 상지와 하지 팀으로 나뉘어 해부를 하면 각자 맡은 부위만 공부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상호 학습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각 조가 담당 부위의 구조물을 모두 찾아 교수님께 설명하고 체크를 받으면, 체크를 먼저 마친 조끼리 매칭되어 서로 해부 결과를 설명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우리 조의 하지 팀은 상대 조의 상지 팀과, 우리 조의 상지 팀은 상대 조의 하지 팀과 짝을 이루어 설명을 주고받았고, 설명을 들은 사람은 구조물 체크리스트에 표시하며 학습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상호 학습 시간에는, 조별 카데바의 특이점을 화면에 띄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심장에 페이스메이커를 삽입한 분, 폐암이나 간암으로 인해 암 전이가 심한 분, 넙다리뼈에 철심을 박은 분 등 다양한 질환과 치료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습 외 경험
실습을 가지 않는 날에는 일본 친구들과 모츠나베, 초밥 등의 식사를 하거나 일본 친구들이 원래 노는 코스를 소개받아 함께 즐기기도 했습니다. 함께 간 한국 동기들이 모두 다른 조에 배정되었기에, 서로의 조원들과 번갈아 만나며 더 많은 일본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해 영어로 주로 대화를 했는데 영어 실력이 친구들마다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디 랭귀지, 단어 단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그렇게 서로의 비슷하고도 다른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일본의 성년의 날과 겹쳤는데, 많은 일본 친구들이 20세가 되어 기모노를 입고 기념식을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또 우리는 예과 2학년 2학기부터는 수업과 시험이 많아 공부에만 치중된 삶을 사는 것에 비해서 일본 2학년 친구들은 다양한 아르바이트, 동아리 활동( 활쏘기, 골프, 체조 등)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 같아 신기했습니다.
마무리 및 소감
이번 규슈 의대 해부 실습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해부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신경과 혈관등 구조물을 최대한 보존하며 시신의 원형을 유지하는 방향성이 강한 반면, 일본에서는 절단을 통해 인체 구석구석을 탐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절단 과정에서 주요 구조물을 잃는 경우도 많아 각 방식의 장단점이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실습날 이외에 조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일본 의대생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학업적인 면을 넘어서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라 더욱 의미 있었던 것 같습니다.
2주간의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신 석대현 교수님, 김남구 계장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수기를 마칩니다.